박서련 – 배민다움 Thu, 27 Oct 2022 02:00:41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7.0.2 /wp-content/uploads/2021/06/cropped-배민다움_파비콘_가로512px-150x150.png 박서련 – 배민다움 32 32 소설가가 입사했다 /2647/ /2647/#respond Mon, 14 Feb 2022 16:06:23 +0000 /?p=2647 바로 여기, 배민다움today는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이 직접 이야기를 남기는 공간입니다.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만들고,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나가는 구성원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가장 생생한 오늘의 배민다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배민다움today 역사상 최초로!
우아한형제들 구성원이 아닌 에디터가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박. 서. 련.

작가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아한형제들의 이야기를 쓴다면 어떨까?

이 상상으로부터 배민다움today는 박서련 작가님을 만나게 됩니다.

소설가가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한다니! 진짜? 이게 가능해?! 긴가민가하던 사이 다섯 편의 에세이가 태어났습니다. 박서련 작가님의 원고를 읽고는 “와, 소설가는 정말 대단한 직업이었어!”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요. 작가님 특유의 말맛이 다섯 편의 에세이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올라간 채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몰라요.

에피소드 소개

“일할 때는 완전히 혼자인 직업을 가진 탓에
한동안 ‘우리’를 경험하지 못했던 내게,
그건 아주 귀하고 소중한 응답이었다는 이야기다.”

첫번째 에피소드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한동안 멍.. 해졌습니다. 긴 여운이 남더라고요.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모든 과정에 ‘우리’를 경험하고 있었구나. 누군가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고, 소중한 응답을 받는 일. 또 그 반대의 일이 오늘의 일터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거구나. 작가님이 보내주신 다섯 편의 편지 덕분에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작가님 감사해요 : )

우아한형제들에 다니고 있거나 다녔던 적이 있다면? 우리 일이 이랬구나! 새삼스레 깨닫는 즐거움을.
우아한형제들에 다니고 싶다면? 가상체험을 해보는 기회를.
그냥 지나가는 길인데요? 그냥 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실 거예요.

다섯 편 중 가장 끌리는 주제를 골라
지금 바로 정주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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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2652/ /2652/#respond Mon, 14 Feb 2022 16:05:07 +0000 /?p=2652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이야기를 여는 가장 멋진 방식 중 하나는 편지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멋진 소설가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단편소설은 한 마디로 ‘부름(calling)’이다.”(이어 장편소설은 부름에 대한 응답까지를 포함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그 부름이란 것 을 가장 고상하고 우아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게 아마도 편지일 거라는 건 나의 의견.

무궁무진한 예를 들 수 있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에서 급히 돌아와 달라는 전갈을 받는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집으로 전보를 띄운다. 외계 생명체가 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미약하고 해독하기 힘든 파장이 지구의 탐지망에 수신된다.

왓슨, 이 글을 확인하는 즉시 내가 지시한 장소로 와 주게, 자네의 친구 홈즈로부터—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난 이미 당신 곁에 없겠지. 이 편지는 1876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이건 좀 멀리 간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좌우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도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이야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다. 다소 사적인 부분은 생략하되 맥락과 주요 정보는 살려 그 메일의 초반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글의 장르를 추리라 치면 이 부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정보값만도 상당할 것이다.


보낸 이? 우아한형제들
받는 이? 박서련 작가
편지의 목적? 협업 제안
또한? 우아한형제들과 박서련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님

그렇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이전에 배달의민족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의 ‘요즘 사는 맛’ 코너에 4주간 글을 실은 적이 있다. 그때 쓴 에세이에서 다룬 음식은 쌀, 돈까스, 국수. (첫 주차는 식생활과 내가 쓸 에세이의 방향성을 다루며 날로 먹었다.) 후에 기업브랜딩팀 관계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 내부에서는 ‘요즘 사는 맛’ 코너를 보고 글에 나온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 그 주는 성공이라고 하는데, 작가님 글을 보고 도대체 철원 오대쌀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고향 덕을 본 적이 별로 없다고 여겨왔건만 철원 오대쌀 홍보를 통해 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철원 오대쌀이 그 정도로 맛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오대쌀이 맛있어서 맛있다고 쓴 덕분에 무려 배.민.하고 콜라보를 하게 된 소설가가 있다? 실화입니다. 소설가의 설레는 마음의 값을 구하시오.

 

메일의 나머지 내용을 보자.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역시 레퍼런스 파트였는데, 감히 내가 아니 제가 아니아니, 쇤네가 알랭 드 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랑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는 것은 아니고(라고 쓰는데 어쩐지 콧잔등에 땀이 난다) 당연히 그들이 곱빼기라고 치면 저야말로 보통내기지만, 해당 산업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보고 들은 경험을 글로 얼마간 표현할 수 있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적합성과 유사성이 보인 것이겠거니.


덧붙여 무라카미 하루키는 49년생, 알랭 드 보통은 69년생, 나는 89년생으로 각각 20살씩 차이가 난다. 소오름. 하루키가 2차 산업(제조업), 알랭이 3차 산업(운송업), 서련이가 4차 산업(정보통신업)을 바라보며 에세이를 쓴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볼 만한 지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한국의 한 젊은 소설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4차 산업 기업의 면면을 탐방하고 글을 써보도록 요청하는 것은, 우아한형제들만의 부름이 아니라 시대의 부름이기도 한 것이다.

뜻하지 않게 가슴이 웅장해졌으므로 다시 원래 규모로 줄여보도록 하자.

기획 의도와 실행자들의 의지가 얼마나 뜻깊든 결과물은 할 수 있는 만큼만 나오게 마련이라 써야 할 글의 꼭지와 그 글들의 소스를 어떻게 공급받을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시일이 꽤 걸렸다. 우아한형제들 특유의 기업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테마는 매우 많이 있었지만 테크 까막눈인 내가 두세 번 견학한 것만으로 이해해서 쓸 수 있는 건…… 매우 한정적이었다 는 의미.

우여곡절 끝에 제공된 글감과 내 수준에 맞는 주제의 교집합을 추려 다섯 가지 꼭지를 정했고, 자료를 얻기 위해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분들과 몇 번 미팅을 하기로 했다. 전 지구적 팬데믹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미팅은 우리 모두의 회의실 ZOOM에서 해결했지만 몇 군데는 직접 방문을 피할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아한형제들의 조직문화를 가꿔가고 있는 ‘피플실’.

하……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MBTI 테스트를 얼마나 신뢰하시는지? 개인적으로 그건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고 짜장면을 선택하면 당신은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테스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짜민샹찍이다. 짜장면 좋아하고 민트초코 좋아하고 마라탕과 샹궈중에는 샹궈를, 부먹과 찍먹 중에서는 찍먹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MBTI 성격유형도 마찬가지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무척 당연하고 선명해서 굳이 그걸 말이라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정직한 테스트인만큼, 짧은 시간 내에 성향을 소개하는 데에는 나름 효과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내 MBTI 유형 맨 첫 글자는 I 다. 대문자 I. 외-내향성을 의미하는 두 글자 E와 I 사이에서 단 한 문항도 E에 가까운 답안을 고르지 않는, 티 없이 맑은 I. 낯을 너무 가려서 친구네 집 반려동물한테까지 반사적으로 경어를 쓸 때가 있다. 그런 저에게 일일 피플실 구성원이 되어 출근해 보라니……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나요?
돈 받고 하는 일에 I가 어딨습니까.

자아를 조금 버리고 몽촌토성역 앞 ‘큰집’에 방문했다. 일전 미팅 관계로 다른 빌딩에 방문한 적이 있어 우아한형제들 헤드쿼터에 해당하는 건물이 분산되어 있으며 각각 큰집, 작은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참 이름을 잘 짓는 회사란 말이지. 늘 눈에 탁 띄고 귀에 확 감기는 제목을 짓느라 끙끙대는 직업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부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부분.

피플실 공간이 있는 큰집 6층에 엘리베이터가 닿자, 살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한 글자에 한 장씩 A4용지 꽉 차게 인쇄해 세로로 붙인 ‘과’ ‘연’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문이 다 열렸을 때 보인 전체 문장은 이러했다.

 

서 련 님 배 민 은
천 생 ♥


어디선가 웅장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블루투스 스피커와 선물꾸러미를 든 천사들이 나타났다. 그분들이 피플실 직원이었다.
웃기려고 지어낸 얘기 같지만 틀림없는 실화다. 분명히 자아를 집에서 분리수거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속의 작고 작은 I가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 이거 뭐라고 써야 사람들이 믿을까?

뭐라고 쓰긴 뭐라고 쓰나. 장르가 에세이니 정직하게 써야지.

🥳 “작가님 ‘요즘 사는 맛’에 쓰신 자기소개 보니까 배민 VIP ‘천생연분’ 등급이라고 해서 웰컴 메시지를 이렇게 써 봤어요.”

실로 나의 배민 이용실적 등급은 신용카드 사용으로도 온라인 서점 사용으로도 찍어본 적 없는 최고등급이다. 월 20회 이상 배민 앱을 이용해야 도달하는 ‘천생연분’.

🤗웰컴을 늘 이렇게 하지는 않아요……”

뜻밖의 성대한 환대에 당황한 내 기색을 읽어내신 듯, 다른 한 분이 덧붙여주셨다. MBTI 가 I로 시작하는데 장차 배민에서 일하고 싶은 지원자 여러분에게 이 사실이 큰 힘이 되기를.

6층 로비에서 사원증과 신규입사자에게 주는 웰컴 패키지 꾸러미를 받고 ‘큰집 투어’를 시작했다.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주인공들’이란 의미에서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의 사진으로 온 벽면을 장식한 18층 공간. 탕비실을 벽으로 막아두지 않고 플로어 로비를 향해 오픈된 형태로 구성한 다음 ‘우물가’라고 이름 지은 연유. 지금까지 배민에서 선보인 서비스들을 명화 패러디 형태로 만들어 전시한 갤러리. 층마다 스포츠 테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으며 그 꽃이라 할 수 있는 육상 종목 테마 층에는 구성원들이 백 명 넘게 모여서 회의할 수 있는 트랙방이라는 회의실(말 그대로 트랙이었다)이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 이 모두 ‘배민다움’을 지향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아한형제들에 ‘공간디자인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원들이 많아지면 필요한 공간도 많아지고 공간의 쓰임새도 다양해지잖아요. 보통은 이럴 때 공간 구성을 위해 외주 인테리어 디자인팀과 계약을 하겠죠. 그런데 아무리 실력이 좋은 팀이어도 ‘배민다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배민에서는 공간에 그걸 표현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단 사실을 매우 초기부터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간디자인실이 생겼죠.”

우아한형제들에서 함께 일하게 된 새로운 동료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는 부분이 이 웰컴 패키지와 공간투어가 포함된 웰컴온이란 프로그램이고, 그걸 전담하는 이들이 피플실 사람들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과연 그렇지. 물건과 환경,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공간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맡는 사람들도 있어야겠지.

 

🥳새로 온보딩하는 분들도 이 분위기를 맛보셔야 하는데…… 직접 와서 체험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기존 구성원들도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매주 합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이 문화와 분위기를 가능한 많이 느끼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공간투어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어요. 반응이 매우 좋았지만 인터넷 연결 환경 같은 변수가 있어서 더 효율적인 방식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설명을 듣고 보니 피플실은 정해진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라기보다, 신규 입사자들에 게 ‘배민다움’의 첫인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사명을 지향하는 집단처럼 느껴졌다. 수단과 방법을 막론하고 그 사명에 충실한…… 천사들인 줄 알았는데 특전사들인가? 그런 생각이 불현듯 났다. 투어를 마치고 피플실과 이웃한 부서의 분들과도 (대문자 I 다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피플실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들었다.

🤗우아한형제들 안에서도 피플실은 뭐하는 곳인가? 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신규 온보딩하는 분들을 위한 웰컴 메시지를 드리는 것 외에도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시는 분들 누구나 ‘여기에서 일하니까 너무 행복하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에요.”

일터에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과 배민다운 경험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직이 흔한 IT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5년, 10년 이상의 근속연차 돌파 사례가 상당한 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문득 떠오른 건 대학 시절 학생회에서 학생복지 차원에서 시험기간 선착순으로 간식을 나눠준다던 이벤트였다. 한 사람 앞에 밥버거 하나 음료수 하나, 합쳐서 삼사천원 하는 걸 한 두 번, 그것도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게 무슨 복지? —라고 생각했던 경험. 그런데, 나처럼 심사가 꼬인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 작은 챙김과 돌봄에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내가 간과한 건 마음이었다. 학생회 사람들 개개인과는 딱히 잘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외롭고 고된 시험공부 도중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마음.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기울어지는 작지만 확실한 관심.

피플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도 그런 것이었다. 이 회사가, 내가 여기에서 일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구나,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구나 라는 메시지를 빈틈없이 전달하는 것. 물론 피플실에서 주는 걸 밥버거와 음료수와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더욱 가슴 찡하게 만드는 점은, 피플실에선 일하는 사람 천 오백명에 이르는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 모두의 행복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TMI: 한 서너 번 만날 때까지는 쭉 낯가림을 한다) 한 마디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피플실 분들이 배민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다면…… 피플실 분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죠?”
어쩐지 <여러분> 가사같은 질문이 나와버렸다.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느낄 때,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만 이렇게 받으면 피플실 분들은 누가 챙겨요? 그런 질문이요. 그 질문만으로 엄청 행복해져요.”

🥳저희한테 소소한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너무너무 감사하죠. 저희한테는 일인데, 일을 열심히 해서 누군가 감동을 받았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평소에도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해요.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또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는 게 무척 즐거워요. 그런데 이 일은 회사가 저한테 선물을 하라고 지원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직업만족도 자체가 엄청 높아요. 이 일을 하게 된 것 자체가 행복해요.”

배경음악으로 세인트 어쩌구 소년 합창단의 상투스 같은 곡을 틀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 “그럼 작가님도 오늘은 피플실 구성원이니까 저희가 하는 일을 함께 해 보실까요? 작가님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생각해봤는데, 저희가 웰컴 패키지를 포장할 때 쓰는 이행시를 지어주셨으면 해요.”

그러고 보니 내가 받은 선물 보따리에도 내 이름으로 된 이행시가 붙어있었다.

서: 점에서 주로 어떤 코너를 많이 가세요?
련: 애소설 보다는… 전 이젠… 서련님 책 읽으려구요~~~~ 우아한형제들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저보고 이걸 쓰라고요?
지금요?
여기서요?
진짜요?

왜요?

애초 기획서에 단순 견학 방문이 아니라 ‘배민에 소설가가 취업한다면’이라는 느낌으로 실제 가능한 업무를 수행해보는 게 어떻냐는 부분이 있긴 했다. 진짜 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으나.

“작가님은 프로니까!” 라며 만화같이 반짝반짝 눈빛 공격을 삼면에서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행시라니, 이렇게 말과 글을 사랑하는 회사도 드물 것이다. 비슷한 말을 최근 어떤 행사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를 짓는 민족입니다. 이행시 삼행시. 시라고요, 시. 그러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어진 시제를 각행의 첫 글자에 두고 너무 터무니없는 구성을 피하도록 하는 N행시의 원칙에 더하여, 신규 입사하는 이들에게 위트 있고 마음씨 넉넉한 우리 회사라는 첫인상을 줄 수 있도록 써야 하고, 당신의 입사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도 담아야 하는 것이었다.

🤗입사 첫날은 누구에게나 뜻깊은 날인데 지금은 팬데믹 상황이어서 대부분 언택트로 업무를 시작해야 하거든요. 직접 맞이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한 고민과 더 뜨겁게 환영하고 싶은 진심을 담아 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어느덧 당연한 루틴이 됐어요.”

인중에 뻘뻘 맺히는 습기를 느끼면서 그럭저럭 열몇 사람의 이름으로 이행시를 짓고 인쇄한 다음 택배 박스에 붙이면서 들은 이야기다. 아니, 그렇다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사서 이런 고생을 한단 말인가. 나야 그 주 신규 입사자 열 몇 사람에게 보내는 이행시를 지었을 따름이지만 원래 담당자님은 지금껏 수백 명의 이름으로 이행시를 지어오셨을 텐데, 그게 원래는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건 ‘정해진 업무가 아니라, 일하는 이들의 행복이라는 사명에 충실한’ 피플실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한 마디이기도 했고, 새로운 깨 달음을 주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창의적인 작업은 사실 ‘시키지도 않은 짓’에서 나왔다는 사실.

🥳이번 주에 온보딩하는 분들께 꼭 말씀드릴게요. 이번 이행시는 무려 소설가가 지었다고!”

안 하시면 안 될까요…… 너무 부끄러운데…… 라는 말을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다. 반나절 내내 낯가림을 해놓고도 일일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갑자기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아 나도 진짜 우아한형제들에 입사지원서 한번 넣어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플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에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같이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구성원일수록 더 마음 쓰며 다가와 환대를 건네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다음 순간에는 불현듯 불안감도 들었다. 사실 이 날 일일 근무에는 나의 작업들을 케어해 주시는 저작권 에이전시 실장님도 동행하셨는데, 우리 실장님도 나랑 똑같이 생각하신 끝에 “작가님 저 이 일 그만두고 우아한형제들 지원하려고요”라고 하시면 어떡하나? 실장님도 같은 걱정을 하셨을까? 실장님 저 이딴 거 다 때려치우고 지금이라도 개발을 배워볼까 합니다……

부름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응답으로 끝난다.
몇 주 지나 기업브랜딩팀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쓴 웰컴 이행시를 받고 들어온 신규 입사자들이 이행시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는 소식. 단체채팅방에서 직접 언급해준 분도 계시고, 택배 상자를 사진으로 찍어 인증해주신 분도 계시다고 들었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다는 기억이 안 나고 쓰는 동안 너무 민망하고 죄송해서(왜?) 뒷머리와 목덜미 사이가 삐죽삐죽 일어서던 느낌만 생생했는데, 그럼에도 그 답신들이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어디에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피플실에서는 ‘이번 이행시를 소설가가 썼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이행시가 택배 상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그것을 소설가 박서련에게서가 아니라 우아한형제들로부터, ‘우리 회사’로부터 받은 첫 메시지라 여겼을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인사를 건넬까를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보내온 답신은 그때 아주 잠깐이나마 나도 정말 배민에 속했음을 증명한다. 일할 때는 완전히 혼자인 직업을 가진 탓에 한동안 ‘우리’를 경험하지 못했던 내게, 그건 아주 귀하고 소중한 응답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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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2659/ /2659/#respond Mon, 14 Feb 2022 16:04:58 +0000 /?p=2659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나를 대신해 살생의 노고를 감수해온 분들에게

나의 어리석은 말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미랑 <섭식일기> 서문시사IN 746호 김연희 기자

<‘비건도’ 맛있는 게 아니라 ‘비건이라서’ 맛있는 거예요> 기사에서 재인용

 

 

영미권에는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상황에 쓰는 말로 ‘뜨거운 감자’라는 표현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서 맛있어 보여 덥석 물었는데, 뱉으면 더럽고 계속 머금 고 있자니 뜨겁고. 아마도 그런 의미겠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것은 쟁점이 많다는 말이고, 쟁점이 많으면 주목하는 시선도 늘게 마련이어서 뜨거운 감자는 말 그대로 뜨거운 이슈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나에게 비거니즘이 그렇다.

비유가 감자인 것도 마침맞군. 같은 상황을 삼국지 문화권에 서는 보통 계륵이라고 하지 않나.

 

늦가을에 반강제로 채식생활을 한 달 정도 했다.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원래도 오랜 생각을 품고 있던 참이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이 금지된 동안에는 더욱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우선 채식과 비거니즘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이유에 대해서 첨언해둘 필요가 있겠다. 내가 아는 바로 비거니즘은 동물에게서 얻는 모든 원료를 사양하는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동물의 몸과 젖뿐 아니라 꿀벌이 채취한 꿀이나 훈련된 원숭이가 따는 야자열매처럼 동물의 노동으로 생기는 부산물 또한 비거니즘에서는 제한된다. 또한 동물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하는 화학물질이나 동물의 몸으로 만드는 사치품은 식탁에만 오르는 것이 아니기에, 비거니즘은 의식주 전반에 걸친 모든 소비에서 고려된다. 요즘 한국에서도 채식주의자라는 말 대신 비건 지향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 역시 ‘채식’이라는 말이 그러한 삶의 태도를 모두 포괄할 수 없기 때문으로 짐작하고 있다.

 

어째서 꽤 잘 아는가? 인터넷에서 찾아다 붙여 넣은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친구 중에도 비건 지향인이 많고 나도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나는 스스로를 ‘논비건 치고 비거니즘 감수성이 있는 편’ 정도로 여기고 있다. 식탁 바깥에서나마 비거니즘을 추구한다며 소모품이나 사치품을 크프비(cruelty free vegan, 동물실험 및 착취를 하지 않은 비동물성 원료 사용)로만 구매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실천을 이어가면서. 물론 의식주 가운데 소비가 가장 잦은 분야는 식이므로 그 바깥에서만 비거니즘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소 비겁한 듯도 하지만, 내가 아는 바 비거니즘은 하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무조건 나은 실천적 가치이기에, 나는 스스로와의 작은 약속이나마 지속해갈 작정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 생활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부분은 먹는 것인지라 채식이 비거니즘의 대명사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채식에는 동물 착취를 거부하는 동물권 비거니즘 외에도 다양한 사유가 있어서, 역시 완전히 적절하지는 않다. 가령 살생을 금하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체질적으로 받지 않아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안 먹어 버릇 하니 맛을 잘 모르겠어서. 기타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다양한 이유로 고기는 먹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갑자기 비거니즘이 아닌 이유로 고기를 안, 아니 못 먹게 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갑자기, 하루아침에 말이다.

 

“어제 갑자기 한 행동이 있나요?”
“갑자기요?”
“네, 한동안 안 하다가 오랜만에, 또는 난생처음으로 한 행동이요. 먹는 거나 입는 거, 접촉되는 거 위주로.”

의사의 말에 곰곰 생각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겨울이불이었다.
“어제 추워서 겨울이불 꺼냈어요. 세탁하고 넣었던 거라 그냥 덮어도 될 줄 알았는데.”

“먹거리는요?”
“음…… 아침 점심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저녁에는 배민에 새로 뜬 식당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시켜먹었어요.”

“그렇군요. 두드러기는 원인이 너무 다양해서 딱 짚어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일단 짐작되는 건 다 제한해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원인이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알러지 대부분은 음식 탓이니 돼지고기는 절대 드시지 마시고요.”

 

처방전을 쓰면서 의사는 약을 다 먹고도 한동안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흥, 웃기는 소리. 겨울 이불 탓이 분명하다고 나는 확신했다. 확실히 세탁한 이불인데 수납장 위에 있는 이불을 꺼내면서 먼지를 훅 들이마신 게 아무래도 의심스러웠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불은 한번 더 빨지 뭐. 집에 가는 길에 소시지빵을 사고 코인빨래방에서 이불을 빨았다. 이제 안심, 이라고 생각했지. 그때는.

 

다음날 새벽 걸어서 응급실에 가면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늦은 밤부터 몸이 가렵고 부어오른 것은 물론 숨 쉬기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항생제 한번 더 먹고 가라앉으면 내일 아침에 병원 가자, 라고 생각했지만, 자다가 숨이 막혀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를 것이 걱정되어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몇 시간 흘러서도 결국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고민 끝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응급실에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밤새 나를 괴롭힌 두드러기는 30분간 맞은 수액 한 팩에 진정되었다. 두드러기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표피뿐 아니라 체내에도 돋을 수 있어서, 즉 기도를 붓게 해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나 이제 정말…… 돼지고기를 못 먹는 몸이 된 거야?

 

뻥 좀 보태서 죽다 살아나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우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식생활 상당 부분을 서민의 친구 돼지고기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뭘 먹고살란 말이지?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한 건 정말 절박한 상황 이어서가 아니라 사소한 사건도 부풀리고 MSG를 쳐서 재미있게 만들려는 직업적 습성 탓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직업적 습성 덕에 나는 기분의 전환도 빠른 편이어서, 이 일을 ‘오히려 좋아’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좋아: 어디 이 참에 채식을 시작해볼까?

 

이 시기에 고기를 전혀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고기, 어떤 메뉴가 안전한가를 굳이 스스로의 몸으로 실험해 알아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적어도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비건 메뉴만 먹었다. 적어도 나 말고 대신 구급차를 불러줄 입이 하나 더 있을 때에만 고기를 먹겠다는 원칙을 세웠던 것이다. 먹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만 빼면 반강제적 채식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내가 사는 지역은 서울 북서쪽 변두리인데 뜻밖에도 배달가능지역에 비건 식당, 비건 옵션 메뉴가 있는 식당이 꽤 들어와 있었다. 이것도 과장 좀 보태서 하는 말이지만 이 시기에 내가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배민 덕이다. 걸어서 왕래하기엔 멀지만 배달은 가능한 지역에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메뉴를 취급하는 식당들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채식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습관처럼 배민 어플을 켰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채식’ 아이콘이 배달가능 메뉴 카테고리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주 2회 상주작가로서 한 사설 도서관에 출근하는데 그 도서관은 청담에 있다. 전날 저녁만 해도 우리 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이콘이어서, 그새 업데이트가 되었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출현하는 카테고리가 있는 것, 둘 중 한 가지겠거니 싶었다. 역시나 그날 퇴근하고 집에서 앱을 켜 보니 채식 아이콘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배민에 채식이라는…… ‘숨겨진’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

 

우아한형제들이 협업 의사를 타진해왔을 때 옳거니 무릎을 친 연유에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연락을 받은 시기가 나의 비자발적 채식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는데, 딱 마침 맞게도 채식 카테고리에 대해 제대로 여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 사적인 이유에서 막무가내로 아이템을 선정한 게 아닐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기업브랜딩 팀에서도 괜찮게 생각해 주셨고, 개발 당시의 기록을 담은 자료와 함께 언택트 미팅 일정을 잡아주셨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팀, 현재 채식 카테고리 운영을 전담하는 팀에서 각각 한 분씩이 스피커였다.

 

🌱 “채식 카테고리는 2020년 7월에 오픈했는데, 오픈 하루 만에 닫고 재정비를 거쳐서 다시 오픈했어요.”

 

듣고 보니 가물가물하나마 기억이 났다. 트위터가 한바탕 뒤집어졌었지. 말했듯이 나에게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지인들이 제법 있고, 그들은 대부분 트위터를 한다. 덕분에 트위터를 통해 최근의 비거니즘 동향을 접하곤 하는데, 2020년 어느 날엔가 누군가 “이게 비건 메뉴라고요?” 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올린 캡쳐 화면이 내 타임라인에까지 흘러들어온 적이 있었다. 삼겹살 배달 전문점 등 똑바로 봐도 옆돌기를 하며 봐도 비건 식당이라 하기 힘든 곳들이 채식 카테고리에 노출이 되었고, 모처럼 채식 카테고리가 생겼다는 소식에 배민 앱을 연 비건 지향인들이 그런 사례들을 수도 없이 보며 경악했던 때.

 

돌이켜 보면 총체적으로 아이고…… 소리가 나오는 사건이었다. 상추 추가 옵션이나 사이드 음료 등을 이건 고기가 안 들어가니까 이것도 채식이겠지? 라고 생각한 사장님들이 많았 던 게 아닐까. 비건 이용자들의 분노도 이해가 됐지만 사장님들도 어리둥절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기껏 만든 신규 카테고리를 오픈하자마자 접어야 했을 앱 개발진의 속이 얼마나 쓰렸을까 싶었다. 혼자 살면서도 배민 천생연분 등급을 놓치지 않는 자타공인 배민러버인 내가 괜히 죄송하고, 마치 배민 비공식 대변인이라도 된 양 눈치 보이고.

 

어떤 마음에서 신규 카테고리를 만들었겠는가 하면 물론 ‘이것이 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라는 기업적인 마인드가 바탕에 있었겠지만, 선의냐 악의냐 하면 말할 것도 없이 선의에 가깝지 않았겠는가. 비건 이용자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려는 악의가 아니라, 끼니 때울 때마다 밥 먹을 곳 찾아 헤매야 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맛있는 것을 찾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선의.

 

🌱 “1차 오픈 때에는 채식 메뉴와 식당을 확보하려고 사장님들이 셀프서비스로 채식 메뉴를 등록할 수 있도록 마련해 뒀어요.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채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보다는 일부 메뉴를 채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식당이 더 많기도 하고, 그런 식당까지 포함해도 충분히 많지는 않은 상황이니까요. 여기에 어떤 메뉴까지를 채식으로 정의해도 좋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실제로 채식을 하는 이용자들을 사전 체험단으로 모집해 의견을 다양하게 들어보면서 고기는 먹지 않지만 생선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 메뉴까지 포괄하는 걸로 결정했는데, 얼마 후에 사장님 셀프서비스 메뉴 등록 현황을 보니 입점 가게 대부분이 일식 가게더라고요. 사실 이때부터도 이대로 오픈해도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오픈 하루 만에 임시 중지라는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그런 흐름이 있었군. 물론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상대적 소수 문화에 속하는 분야에 대해 접근하며 오랜만에 신규 카테고리를 개발하는 과정이었기에 배우고 남길 것이 더 많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신규 카테고리를 개발했다는 말씀은?

 

🌱 “배민 메뉴 카테고리는 계속해서 늘어왔어요. 극초반에는 원래부터 배달로 먹는 게 익숙했던 치킨이나 중식, 족발 정도만 등록되어 있어서 대분류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배달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주문할 수 있는 음식 종류에 제한이 없어졌죠. 대부분의 카테고리는 그래서 자연발생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미 입점해 있던 가게들을 당 연하게 한중일양식 등으로 나누고, 단일 메뉴로도 워낙 거대한 카테고리를 이루는 치킨이나 족발 등으로 또 나누고. 참고로 채식 카테고리 이전 막내는 카페, 디저트 메뉴예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나야말로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카페 음료를 집에서 시켜먹는 걸 상상하지 못했던 게 생각났다. 내 몸은 이제 집 밖으로 나가서 음료를 직접 주문해 먹는 걸 더 어색하게 여긴다는 것도 함께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 “사실 채식 카테고리는 배민에 있는 카테고리 중 최초로, 또 유일하게 사용자 지향적인 목적에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커요. 현재 시장 동향을 보았을 때 채식이나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자층이 있고 그에 발맞춘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배민에서도 이 흐름에 응답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고요. 말씀드렸듯 배민에 있는 기존 카테고리 대 부분은 원래 등록되어 있던 가게들을 나눈 것이고, 그건 다시 말하면 가게 사장님 지향적인 편성이죠. 채식 카테고리는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배민이 먼저 찾아내겠다는 소비자 지향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카테고리라는 점에서 대조적이죠.”

 

기존의, 가령 셀프 등록이 가능했던 1차 때는 채식 카테고리에 진입할 수 있었던 가게의 사장님들이 2차에서는 등록하지 못해 반발하는 사례는 없었는지도 궁금해졌다.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가게의 경우 여러 카테고리에 걸쳐 노출되는 것을 심심찮게 봐왔고, 노출 횟수는 더 높은 매출로 직결될 테니 채식 카테고리에도 가게를 계속 노출시키고 싶어 하는 사장님들이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웬걸 그렇지는 않다는 답변이 나왔다. 항의가 있었다 해도 사장님보다 사용자 쪽에 초점을 둔 카테고리여서 왜 노출이 안 되는지 설득했을 텐데, 사장님들 모두 그냥 이제 안 되나 보다 하고 쿨하게 잊으신 것 같다고.

 

현재는 채식 카테고리가 노출되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여쭤보았다.

 

🌱 “채식에 대한 수요가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또 채식 전문 식당 수가 일정 이상 확보된 지역에서만 노출되도록 한 거예요. 이태원, 성수, 강남, 서초……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트렌드에 민감한 지역에 채식 소비자도, 공급자도 많이 분포되어 있고요.”

 

2차로 재오픈할 때는 채식 카테고리 진입이 사장님 셀프 등록 대신 운영팀 승인을 거친 방 식으로 변경되어서 어떤 지역에 채식 식당이 많은가를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2차로 넘어오면서는 1차에서 메뉴에 포함했던 생선 위주 요리도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도 큰 차별점이 될 거예요. 실제 비건 지향 사용자 분들과 진행한 인터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채식을 하는 이유도 다양하고 그만큼 채식에 대한 시선과 의견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용자들이 채식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걸맞게 생선을 제외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요.”

 

일반적인 사용자들이 채식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도록 생선을 포함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

 

🌱 “채식을 하시는 분들은 채식의 단계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어서 설명이 필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생선까지 먹으면서 그게 무슨 채식이야?’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사용자들 의 혼란은 사장님들의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쉽고요. 1차 때 이미 확인했듯 페스코 채식 메뉴까지 포함하면 일식 가게들 대부분이 진입할 수 있게 되는데, 일식 카테고리가 이미 있는 상황이니 생선을 포함할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재오픈 때부터는 유제품, 계란까지 식재료에 포함하는 락토 오보 베지터리언 메뉴를 기준으로 삼았어요.”

 

그렇게 불사조처럼 다시 날아오른 채식 카테고리는 1년 넘게 꿋꿋이 살아남아 결국 일시적-비자발적 채식 생활을 시작한 내 눈에도 들어온 것이었다.

 

🌱 “참고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사용자 반응 분석 결과 채식 카테고리에서 채식 메뉴만 주문하는 경우는 전체의 12% 정도였어요. 그 나머지는 마라탕을 육수 대신 채수로 끓이는 등의 채식 옵션이 있거나 메뉴 일부가 채식으로 제공되는 식당에서 채식과 논비건 메뉴가 동시에 주문되었다는 의미죠. 한 식탁에서 채식인과 논비건이 함께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채식 지향인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큰 장벽 가운데 하나가 직장 등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 한마디로 사회생활과 자기 원칙이 충돌할 때의 어려움이라고 들었는데 요,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해요.”

 

채식 카테고리 전, 현직 담당자님들과 짧은 인터뷰를 하고 나니 인터뷰와 사전 자료에서 종종 사전 체험단과 인터뷰 대상으로 언급된 채식인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아직은 척박한 국내 채식 환경에서 점유율 1위 배달 앱이 국내 최초로 채식 카테고리를 개발한다는 것을 알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의견을 나눠줄 때는 또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렇게 여러 의견을 주고받고 2020년 7월 채식 카테고리가 처음 오픈되었을 때 벌어진 소동을 접하고는 또 무슨 심정이었을지…… 이 모든 마음들을 절로 상상하게 한 다는 점에서, 채식 카테고리는 사용자 지향성을 중심에 두며 개발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이어서 기업의 마음(그런 것이 있다면)은 상상할 수 없지만, 또 자본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일원이다 보니 나와 같은 소비자들의 입장보다 기업의 입장이 더 잘 이해될 때 가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이윤을 추구하는 정직한 성격이라 한 길 사람 속보다 훨씬 더 잘 이해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채식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환경을 덜 파괴하는 선택이 되고, 환경을 생각한 실천은 어느 기업 하나 또는 몇몇 사용자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두의 이익이 되니까, 이 생각이 그리 심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12월 초순 즈음부터 다시 돼지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돼지고기에 알러지 반응이 나타난 계기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지만. 내가 다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감탄스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해서 이상했다. 마치 다시, 가 아니라 난생처음으로 고기를 먹게 된 것처럼 어리둥절했다고 할까.

 

나는 여전히 논비건 식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따금은 그때 자주 시켜먹은 비건짜장 생각이 난다. 짜장면이란 돼지기름이 워낙 많이 쓰여서 돼지를 빼고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고, 실로 그때 먹은 비건짜장 또한 내가 알던 짜장면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잘 볶은 양파와 춘장의 조화가 단짠의 균형을 오묘하게 이루고 아삭한 죽순이 식감을 돋우어 멋진 요리였다. 비건이 논비건 요리를 안 먹는다고 논비건도 채식 요리를 먹으면 안 된다는 법 같은 건 없기 때문에 나는 요새도 채식 요리를 종종 찾는다.

 

내가 가끔 채식을 하는 논비건이라는 사실이 나는 그렇게 부끄럽지도, 썩 자랑스럽지도 않다. 다만 만약 내가 일주일에 단 한 끼라도 채식을 한다면, 하루라도 채식을 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이런 식생활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되고 더더욱 늘어간다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변화가 나타나겠지.

 

나의 상상은 그 증거를 배민 채식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식생활에 아주 약간의 변화를, 포인트를 주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채식 카테고리는 살이 오를 것이고,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미래가 오늘로 성큼 다가올 것이다. 배민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이와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고 감히 확신에 차 주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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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싫어요 /2663/ /2663/#respond Mon, 14 Feb 2022 16:03:36 +0000 /?p=2663

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이렇게 시작해보면 어떨까…… 우아한형제들에서 제안한 글감과 가제 가운데에 이런 게 있었다. “흰 것은 코드요, 검은 것은 화면이다”. 반대인가? 까만 것이 코드고 하얀 것이 화면이었던가? 아무튼 그런 제하에 얼렁뚱땅 가짜 개발자 같은 걸로 우아한형제들에 위장 취업을 해 보는 내용. 그런데 그것도 뭘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는 거지, 지금 보시다시피 저는 뭐가 까맣고 뭐가 하얀지도 잘 모릅니다. 뭐가 검고 뭐가 희냐면 저의 눈동자가 까맣고 이가 하얗……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자신 있게 하얗지는 않은데 (적어도 튼튼은 합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저는 DNA에도 문과라고 새겨져 있을 그런 문과인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오 문과가 DNA도 알아? 라고 하는 이과인 분들이 계실 것 같은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제가 모든 문과인을 대표하지는 않으니까요…… 내가 모른다고 모든 문과인이 모르는 것은 아니 고 내가 아는 건 문과인 대부분 알고 있음을 미리 밝혀두며 새로운 이야기, 시작.

 

 

우선은 SRE팀으로부터 우아한형제들의 서비스 장애대응 프로세스에 대해 배웠다. 참고로 SRE팀, 즉 테크 기업 내 장애대응조직 자체는 우아한형제들만의 문화는 아니라고 한다. 구글에서 처음 도입했고, 우리가 이름을 아는 국내 포털사이트 기업에도 이제는 다 도입이 되어 있다는 모양. 우아한형제들만의 차별성을 꼽자면 끼니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분야 다 보니 오류 대응 타임 어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또한 대응 전문 팀을 꾸리다 보니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알고리즘도 이제는 일목요연하게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 “제 경우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넌 대체 배민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하면 그냥 불 끄러 다닌다고 해요. 앱 소방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애대응 업무 담당자로 일하는 주희님이 든 소방관 비유가 무척 직관적이고 이해가 잘 되어서 마음에 쏙 든 김에 계속 활용해보자. 배달의민족이라는 앱이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작은 방의 한 부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실내 공기가 탁해지기 시작하면 화재감지기가 알림을 울리겠지? 그러면 알림이 울린 방이 어디인가, 큰 불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확인한 다음 달려가는 것이 건물의 자율/자체 소방대가 있다. 그리고 실제 화재 상황에서 불을 잘 끄려면 그에 못지않은 훈련이 필요한 법인데, 우아한형제들은 실제 건물에 위험 부담을 안기지 않기 위해 아예 따로 부지를 구입해 배달의민족과 똑같이 생긴 세트를 세운 다음 거기서 불을 피우고 끄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세트라곤 해도 실제 건물과 완전히 똑같이 만든 복제판인지라, 거기서 나는 화재는 얼마든지 오리지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실제와 무섭도록 유사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게 바로 모의장애훈련인 것이다.

 

🚒 “실제 장애상황 대응 경험이 많고 장래 장애상황에서도 주도적으로 해결을 맡는 분들을 ‘키맨’이라고 부르는데, 키맨들과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개발자들은 제외하고, 문제상황 경험이 적은 신규 분들, 주니어 개발자분들을 주로 모의장애훈련에 참여시키고 있어요. 모의장애훈련의 목표는, 기술에 통달하자는 방향은 아니거든요. 더 중요한 건 다른 팀과의 소통, 본인이 목격한 문제를 알리고 공유하는 방법과 능력을 키우는 거죠.”

 

하긴 우아한형제들에 입사할 정도인데 개발 능력이 별로일 리는 없겠지. 체력이 좋은 건 소방관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지만, 체력만 좋아서는 소방관이 되기 어렵다는 말처럼 들렸다.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동료와 신속하게 역할을 나누는 소통 능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소방훈련을 할 때처럼 모든 구성원이 다 함께 참여를 해야 하나요? 일 년에 몇 번 정도 모의장애훈련을 하겠다, 그런 목표가 있나요?”

 

🚒 “실제 업무에는 늘 실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하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지만 업무 관계상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서들이 함께 모의장애 훈련을 하는 경우는 많고요. 또 어떤 장애상황이든 항상 소통에 참여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부서들은 거의 모든 모의장애훈련에 협조하는 편이죠. 문제상황에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게 모의장애훈련의 목표니까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내 방에서 난 불은 옆방에도 번질 수 있으니 가까운 방 사람들이 모여서 대피와 불 끄는 법을 배우는 것이 효율적일 터. 개념이 잡힐 듯 말 듯해서 모의장애훈련 실제 사례에 대해 듣고 싶다고 요청하자, 주희님이 실제 모의장애훈련에 참여한 설계자 한 분, 참여자 한 분을 대표로 연결해주었다.

 

먼저 설계자 수영님이 직접 설계한 오류를 소개했다.

 

🚒 “발생 가능한 오류 여러 개를 동시다발적으로 일으켰어요. 주문 과정을 상상해 보세요.

사용자는 앱을 열고, 주문을 하죠. 주문을 접수해서 프랜차이즈 본사에 전달하는 게 우리 앱의 정상적인 응답인데, 이 주문이 성공한 주문인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할 수 없게 했어요. 주문 유효성 확인 차단이 첫 번째 장애.”

 

“두 번째 장애는 뭐였죠?”

 

두 번째 장애 설명은 참여자 영일님이 맡았다.

 

🚒 “동시에, 브랜드관이라는 탭에서도 오류가 발견됐어요. 그날 할인율이 가장 높은 메뉴와 쿠폰을 노출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그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VoC(Voice of Customer, 고객 의 소리) 가 중간에 치고 들어오더라구요.”

 

과몰입이 특기인 내게는 영일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투명도 20% 정도로 겹쳐 들렸는데 설계자인 수영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  “첫 번째 장애를 발견하고 해결하고 있는 참에 새로운 유형을 보고하는 VoC가 툭 치고 들 어오니 멘탈이…… 바사삭.”

 

영일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역시나 투명도 20% 정도의 눈물이 뺨 위를 질주하는 듯 한…… 착시가 있었다.

 

🚒  “이전에 실제로 발생했던 장애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복기해보는 게 멘탈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됐어요. 이런 규모의 불이 이런 장소에서 났을 때 이렇게 접근하니 효율적으로 해결이 되더라. 그런 기록들이 있거든요.”

 

“또 다른 장애는 어떤 게 있었나요?”

 

나머지 오류들을 설명하는 역할은 수영님이 맡았다.

 

🚒  “원래는 수많은 요청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처리해주어야 하는 서버 프로세스를 인위적으로 줄여서, 실제 처리 가능한 수보다 훨씬 많은 요청이 몰려드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이건 코드를 확인해서 처리 가능한 프로세스를 늘리는 솔루션을 유도한 거고요. 내친김에 네 번째까지 말씀드리면 업체 재고 확인 기능을 고장 냈어요. 정상적인 경우에는 재고가 다 소진되면 자동으로 품절로 전환되고 더는 주문을 할 수 없도록 바뀌는데, 재고 확인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품절된 메뉴인데도 계속 주문을 받아들이게 되죠.”

 

평온한 모습으로 본인이 설계한 엄청난 에러들을 소개하는 수영님이 놀랍게 느껴졌지만, 진행 양상에 대해 듣고 나니 이해가 한결 수월해지는 듯했다. 그러고 나니 훈련 참여자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모의장애훈련을 할 때는 일정만 알려주고 구체적인 시간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지금부터 훈련 시작합니다, 하고 알려주시나요? 아니면 실제처럼 그냥 바로 상황에 돌입하게 되나요? 다 하고 나서는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  “오후 2시였나요, 2시 5분이었던가요…… 그 사이쯤이었나 봐요, 첫 번째 장애가 발견된 게. 터지고 나서야 아 지금부터구나, 하고 알았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장애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고, 슬랙 메신저에 제 이름을 멘션한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니까 띠링띠링띠링띠링 숨 쉴 틈 없이 알람이 이어졌고. 그렇게 되니까 훈련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은 까맣게 잊혀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실제 장애를 맞닥뜨렸어도 그렇게까지 긴장되진 않았겠다 싶을 정도로.”

 

‘실제 장애 상황에도 그렇게 긴장되진 않았겠다’는 감상이 귀에 팍 꽂혔다. 바로 그 느낌을 알게 하려고 모의장애훈련을 하는 게 아닐까? 실전에서의 당황을 줄이기 위해.

 

주희님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  “네, 말씀하셨듯이 훈련 참가자들이 모의장애훈련을 인지해야 하니까 일정까지는 알려줘요. 하지만 언제나 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해 훈련 시작은 불시에, 어디까지나 불시에 합니다. 실제로 누적된 장애 대응 사례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게 설계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서비스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훈련이 너무 빨리 끝나버리면 정말 중요한 소통과 연락 훈련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큰 것 같아요. 소통 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니까요. 영일님이 본인을 찾는 슬랙 멘션이 몰려들어서 긴장되었다고 하셨잖아요, 실제 장애발생 상황에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거든요. 장애 등급의 위험성이 높지 않은 경우는 괜찮지만, 규모가 크고 파급력이 있는 장애가 발생하면 우아한형제들의 개발자란 개발자는 모두 이 장애에 대응해야 하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이겠어요? 장애를 주요하게 맡는 부서에 우리 회사에 다니는 모든 개발자의 질문이 집중된다는 거죠. 개발자들만이 아니에요. 하물며 홍보팀에서도 연락이 와요. 지금 앱에 오류가 발생했다며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이런 질문이 충분히 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몰려드는 메시지에도 당황하지 않는 것 또한 연습이 필요해요. 그래서 모의장애훈련 상황에서는 일부러 슬랙 메시지를 더 많이 보내기도 해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꼬치꼬치 질문하면서요.”

 

그런 거구나…… 이 지점에 이르러 모의장애훈련의 목표와 시행방식이 보다 명쾌하게 이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계자 수영님이 덧붙인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했다.

 

🚒 “설계자인 제가 봐도 제한시간 1시간 안에 다 해결하긴 조금 빠듯한 장애들이었어요. 그 시간 내에 해결 못한다고 페널티가 주어지거나 하진 않죠. 다만 참여자들에게 ‘이 시간 내에 해결하겠다’는 목표 설정이 있어야 실제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사실 전체 훈련 진행시간은 총 두 시간으로 잡아요. 이유를 설명해 드리자면, 우선 장애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스위치로 형광등 불을 켜고 끄는 것처럼 손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의외로. 그동안의 데이터와 케이스 누적으로 시스템이 이미 많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장애를 만드는 것도 어렵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모의 장애 적용에 일단 최대 30분 정도를 드리고……”

 

내진 및 방화가 든든하게 설계된 멀쩡한 건물을 사람 손으로 망가뜨리는 건 확실히 어렵겠지. 끄덕끄덕.

 

🚒 “말씀하신 것처럼 훈련 자체를 진행하는 데에 드는 시간이 물론 제일 넉넉하게 부여되고요. 그게 1시간이에요. 장애 상황이 모두 해결된 다음에는 설계자, 참여자,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본 이들 모두가 ‘회고’ 과정에 참여해요. 남는 시간은 모두 여기에 쓰고요. 이 모든 과정을 합쳐서 2시간을 넘기지 않는 이유는 모의장애 해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할 경우 참여자들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탈진하기 때문입니다. 영일님 말씀처럼 실제 장애 상황보다도 더 큰 집중력과 긴장감을 요구하는 과정인데, 참여자들이 이 집중을 너무 길게 가져가도록 만들면 모의장애훈련 이후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주어진 시간 이내에 모의장애 상황을 다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물론 있어요. 그럴 때는 참여자들을 책망하는 게 아니라 일단 시니어 개발자들이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회고 과정에서 해결책을 더 잘 논의해보는 방향으로 훈련을 마무리지어요.”

 

하긴 참여자들이 아무리 주니어 개발자라지만, 주어진 시험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 한 학생이 아니지 않은가. 당장 다음 순간에라도 실제 상황에 투입될 준비가 된, 어엿한 프로들이지. 그런 사람들이 가짜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 불을 두려워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회사 입장에서 분명한 손해겠지.

 

“모의장애훈련 설계를 할 때 ‘있을 법한 장애’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걸까요? 역시 실제 누적된 데이터?”

 

🚒 “말씀하신 대로 실제 사례들 중 대표적으로 여겨지는 케이스가 일종의 기출문제처럼 고안되기도 해요. 꼭 실제 발생했던 사례가 아니어도 있을 법한 장애를 만드는 건 경험이 풍부한 개발자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과제라고 생각하고요.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많다, 라는 말은 곧 수많은 장애에 부딪쳐봤다는 의미거든요.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나단 뜻도 되죠. 또, 설계자로서 생각해봤을 때 이걸 해결하면 확실히 공부가 되겠다, 자산이 되겠다 싶은 걸 기준으로 장애를 만드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여담인데 회고에서 나온 말 중 저는 이게 기억에 남아요. ‘저 이제 마음 놓고 휴가 가도 되겠네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류를 참여자들이 멋지게 해결했을 때 설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상이 아닐까 싶어요.”

 

모의장애훈련과는 별 상관이 없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용자로서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아닌 나에게도, 그건 역시 뿌듯한 감상으로 들렸다. 그렇지, 그래서 훈련을 하는 거겠지. 그 훈련의 이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아한형제들의 구성원 당사자들에게, 또한 나 같은 이용자들 모두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소홀할 수 없는 거겠지.

 

이야기가 끝나가는 시점, 혹시 모의장애훈련 도중 실제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는 없나요? 그렇게 질문하자 놀랍게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 “아무리 훈련이 중요해도 실제로 난 불을 끄는 것보다 급할 수는 없죠. 그런 경우에는 모의장애훈련을 바로 중단하고 실제 장애 상황에 돌입해요. 모의장애훈련 다음날 장애상황을 맞닥뜨린 팀도 생각보다 많아요. 물론 힘든 상황이지만, 오히려 좋다는 반응이 나오곤 했어요. 아 어제 모의장애훈련에서 연습이 참 잘 됐나봐, 문제상황 공유와 전파가 참 빠르고 좋다. 그런 자체 평가도 있고요.”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남은 한 손으로 타자를 치면서 말하건대 나는 우아한형제들의 장애대응 업무와 모의장애훈련의 의의에 대해 이만하면 잘 알게 됐다고 자부한다. 누가 내게 시험지를 내밀며 모의장애훈련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 쪽지시험에서 90점 이상 맞아야 한다는 협박을 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고, 만일 누가 내게 작가님 배민하고 일한 적 있다면서요? 어떤 일 하셨어요? 라고 물어볼 경우 아 이러이러한 글을 썼고 그중 제일 까다롭게 여겨진 글의 주제는 우아한형제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모의장애훈련이었는데요 모의장애훈련이란 뭐냐면요, 하고 설명할 수는 있는 상태이며, 이 정도가 딱 내게 요구된 이해도였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애초에 이 글의 목적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테크 이야기”이고 그건 테크 문외한 중의 문외한, 선택된 문외한(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을 거라는 굳센 믿음……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신 테크 문외한 여러분, 제가 소설가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음을 증명하는 척도는 여러분이 모의장애훈련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뭐 대충 이해했다고 말한다 해서 우리 중 한 사람이 별안간 설계자나 참여자가 되어 모의장애훈련을 겪어야 하는 일 같은 것은 없으니 그냥 부담을 내려놓고 이해만 해 주시면 됩니다.

 

뭐 재미 차원에서 간절한 척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왜?

나는 이해했으니까.

내가 이해할 수 있으면 어떤 문과인이나 이해할 수 있다.

즉, 당신도 할 수 있다! 최신 테크 따라잡기.

 

감사합니다. (박수 주세요)

 

 

소설가가 입사했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 ep.3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싫어요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ep.5 The 큰 집으로, 더 Next Level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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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모닝 메뉴를 별도 제공하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핫케이크와 스낵랩을 사 오고, 설탕 프로스팅을 입힌 아몬드 콘플레이크와 우유를 곁들인 식사. 먼저 콘플레이크가 아직 바삭할 때 몇 숟갈 뜨고, 짭짤하고 고소한 스낵랩을 해치운 다음, 시럽에 적신 핫케이크와 부드럽게 풀어진 콘플레이크와 프로스팅이 녹아들어 달콤해진 우유를 함께 먹는다.

좋아, 잘 먹었으니 이제 미루고 미뤄온 ‘그’ 원고를 써 볼까.

모처럼 일찍 일어나 평소에는 거르던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한 까닭은 한참 동안 고민한 일과 직면할 용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번 이야기에 만큼은, 용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미 분명했던 바지만,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면서 배달 서비스 플랫폼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어떤 이들에게는 배달 서비스야말로 비대면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귀중한 옵션.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성별과 나이와 자격을 따지지 않는 건강한 일자리.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가게에 손님을 마음껏 받지 못해도 식당 문을 열어둘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 이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 끼 시켜먹을 때마다 쌓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눈감아줘야 한단 말인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지점에서 자기소개를 제대로 해 봐야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인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리랜서죠. 시간적 여유는 다른 현대인들에 비해 많지만 돈은 별로 없는데요, 일상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어서 (제 기준) 미식으로 기분전환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은 저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다른 현대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몇 해는 여행은커녕 콧바람도 마음껏 쐬기 힘든 시기였잖아요. 맛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건 인간의, 적어도 한국인의 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사용되는 듯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다 이러고 살잖아요? 맞죠?

 

‘다 이러고 살잖아요’

 

스스로를 더도 덜도 없는 보통사람으로 믿는 나에게, 나의 양심에 이보다 더 힘이 되는 말은 없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일해서 번 내 돈으로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걸 주문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불법은 아니잖아,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나는 경제를 순환시키는 작은 톱니바퀴로 기능하는 중인데? 모두 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일 리가 있어? ‘다 이러고 살잖아’.

 

보통사람인 내게는 때때로, 옳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게 ‘남들이 안 하는’ ‘유난스러운’ 짓일까봐 꺼려지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작가적 자의식(이런 말을 쓸 때 특히 내게는 용기가 필요하다)을 앞세워 좀 더 정의로운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이 꼭지를 쓰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때는 아마도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우와, 작가님은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분이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은, 약간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작가적 자의식이 한껏 드높았던 상태.

 

“플라스틱 다이어트라는 제목으로 배민그린을 실천하는 에세이를 써 보려고 해요. 제 생각에는 배달 전문점에서 개인 용기로 메뉴를 포장해오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할 때와 비교해서도 물론이지만 집에서 똑같은 메뉴를 직접 해 먹을 때보다도 쓰레기가 덜 나올 거거든요. 분명 의미 있는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략 이런 말을 했었지, 아마?

각설하고,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 마이크 타이슨

 

이번에 계약한 꼭지들 대부분은 우아한형제들이 내게 제공하는 견학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겠지만 직접 체험한 배민그린 이야기,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로 채우겠다고 약속했고, 분명 배민 이용자 및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보장하였는데…… 플라스틱 다이어트 실천을 그렇게 많이 하지 못했고 마감일을 앞두고 돌이켜보니 별로 쓸 얘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실패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가공해서 읽을 만한 이야기로 만드냐 하면 그건 또 애매해버리는……

 

다시 한번 각설하고,

성공사례에서 추출하는 방문포장 이용 매뉴얼 플라스틱 다이어트 실전편.

 

준비물 

  • 보온보냉가방(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데 나는 마침 새로 산 보냉백이 귀여워서 자랑삼아 굳이 들고 다니고 싶었다)
  • 용기(容器, container)
  • 배달의민족이 설치된 스마트폰

 

실행방법

  1. 먹고 싶은 종목(한식, 중식, 치킨… etc.)을 떠올리고 포장 가능 식당 지도에서 식당을 선택한다. 또는 배민 포장 지도를 보면서 땡기는 집이 있는지 알아본다.
  2.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한다. 주문 시 사장님께 보내는 메시지란에 “제가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쓴다. 식당 자체 포장용기에 미리 담아두고 기다리시지 않도록.
  3. 식당에 전화를 걸어 “방금 연어 반 참치 반 주문한 모모동 땡땡빌라인데요, 용기를 가져갈 생각인데 어느 정도 크기면 될까요?” 여쭤본다.
    – 일식집 사장님은 “평소 12피스 초밥을 포장할 때 270mm*130mm용기를 사용한다”고 대답하셨고 내가 가져간 용기는 그것보다는 조금 작았는데 이 정도면 된다고 하셨다.
    – 매운갈비찜집 사장님은 “평소 라면을 끓이는 냄비보다 조금 큰 것”을 챙기라 귀띔하셨고 내가 가져간 전골냄비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 치킨집 사장님은 “아무 반찬통이나 가져오시면 되는데…… 크기가 적당한 게 없으면 여러 개 들고 오세요” 라고 하셨다.
    음!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적당한 크기의 용기가 없으면 작은 걸 여러 개 들고 가면 된다.
    (*사실 전화로 용기 사이즈를 확인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지만, 사장님이 나의 메시지를 미처 못 보고 일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아버릴 경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미리 전화를 드리는 것이 좋다)
  4. 음식이 준비될 것으로 예고된 시간보다 빨리 집을 나선다. (제 경우에는 통화 끝나자마자 보냉백에 용기 넣고 나갔습니다.)
  5. 사장님께 빈 용기를 건넨다. 음식이 담긴 용기를 챙겨서 원하는 장소로 이동해 먹는다.

 

나를 당황시킨 지점은 이 일련의 과정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다.

쉬우면 좋잖아? 실제로 이 과정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집에 없어서 못 챙긴 일회용 양념 종지 정도가 정도고, 그럼 성공이잖아? 성공인데 쉬우면 최고잖아? 심지어는 무엇까지도 좋았냐 하면 못생긴 일회용 포장 용기 대신 내가 고르고 골라 공동구매로 산, 예쁘고 튼튼한 용기에 소담스럽게 담겨있는 음식의 비주얼까지도 좋았다. 최고의 최고의 최고잖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소재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 입장이 아닌가. 내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고 내가 그걸 어찌어찌 극복한 묘수가 있고, 하여 실패가 예상되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 그래야 진짜로 좋다. 그런데 이건 뭐, 짜증이 나 버릴 정도로 모든 것이 순탄한 전개였다. 마침 내가 먹고 싶은 메뉴의 식당은 대체로 지근거리에 있었고 내가 방문한 식당의 사장님들은 모두 짠 듯 다짜고짜 전화해 용기의 크기를 묻는 내게 전혀 짜증 내지 않고 답변해주셨으며…… 심지어는 서비스도 주셨다.

(*라고 쓰는 것이 약간 걱정이 되는데 서비스 안 준다고 불친절한 사장님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환경 문제를 떠나 요즘 일회용 포장 용기 값도 만만치 않다는데 제 발로 찾아와 음식을 담아갈 용기를 내놓는 손님을 미워할 사장님이 있겠는가. 진상 손님으로 찍혀 식당 사장님과 통화로 언성을 높이는 상상, ‘저희 브랜드는 내규상 정해진 포장용기만 사용합니다라며 거절당하는 상상 등을 해 보며 실패할 경우 입게 될 내상에 예비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거 없고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개인 용기를 지니고 온 포장 손님을 좋아해 주셨다는 거다.

 

따라서 유일한 장벽은 우리집 내 자리에 편안히 앉아 밥상을 받는 수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하나일 텐데 사실 이것도 그렇다, 자리에 앉아 배달로 받은 음식을 풀어 헤치는 과정이 과연 늘 편하기만 했는가. 꽁꽁 싸 묶은 봉투를 풀려다가 도저히 안 풀려서 힘으로 뜯으려다 그것도 잘 안되어서 가위를 찾아 간신히 개봉한 뒤, 밑반찬으로 딸려온 것을 보고 아 이 반찬은 필요 없는데 탄식하며 도로 뚜껑을 닫아 상 저편으로 밀어두는 등의 실랑이를 벌여오지 않았는가. 아무리 일회용 포장용기라도 분리수거를 하려면 애벌설거지 정도는 해야 한다던데, 빨간 기름 양념은 또 얼마나 지워질 줄을 모르는가……!

 

반면에 본인 용기에 포장하는 길을 택하면, 스스로의 눈으로 조리과정과 포장 과정을 목격할 수 있고(식당 바이 식당입니다만) 설거지가 잘 되는 용기에 정확히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받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저의 이번 플라스틱 다이어트 도전에 실패…… 라고 부르기는 애매하고, 적절하게 실행되지 못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그 또한 정직하게 털어놓아 봅니다.

 

  • 기본적으로는 일체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싶었다.
    괜히 어렵게 썼지만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걸, 내킬 때만 포장했다”는 뜻이다. 어쩌겠습니까? 저의 양심은 이런 모양입니다.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직전 예시로 내가 썼던 음식 중에는 김치찌개(우리 모두의 소울푸드가 아니겠어요?)가 있었는데 우리집 근처에는 포장이 가능한 김치찌개 전문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분식집 김치찌개 등으로 대체할 의사 역시 없었기 때문에(다들 아시죠, 그거랑 이거랑 같은 음식이 아니라는 거) 그냥 다른 냄비 요리를 포장해 먹어보는 것으로 극적인 내적 합의에 이름.
  • 카페 메뉴를 이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그럴싸한 내적 사유가 있다. 카페 메뉴는 식사 메뉴에 비해 조리가 매우 신속한지라 카페 바로 앞에서 배민 앱을 켜서 주문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으로 외출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럴 일도 없었다.
    한편 이 지점에서 ‘카페 앞에서 앱을 켜는 것보다는 그냥 키오스크나 직원을 통해 주문하는 쪽이 편하잖아?’ 라는 합리적인 의구심도 드실 텐데요…… 배민 앱을 거쳐서 주문하면 주문 내용이 정확하게 기록 및 전달되고 자체적으로 포인트도 쌓이니까요.
  • 가장 아쉽고 뼈아픈 사례. 이 도전에 임하면서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내 용기를 가져가면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지였다.
    아이스크림이란 용적량은 식사메뉴에 뒤지지 않지만 제조 및 포장 시간은 카페 메뉴보다도 짧을 수 있는 메뉴다. 하여 700ml 용기와 보냉백을 챙기고, 아이스크림 가게 바로 앞에서 배민 앱을 켰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포장 지도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우리동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배달은 되는데 포장은 안 되다니. 우리 동네만 그런가? 포장 주문은 굳이 앱을 거치지 않는 고객들이 더 많아서 그런가? 빈 용기가 든 보냉백 손잡이를 팔에 끼고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은 무척 춥고 외로웠다.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돌아섰으나, 아이스크림의 개인용기 포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짐작이 이미 있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들은 배달계에 등장하기 전 이미 오래전부터 포장 위주로 운영되어 왔고 따라서 그간 누적된 노하우를 집약한 방식으로 포장을 하지 않나. 녹기 쉽고, 한번 녹았다 얼면 식감이나 맛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는데 자체적인 기준을 벗어난 방식으로 포장을 해 줬다가 아이스크림이 녹았다, 흘렀다는 항의를 듣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따라서 개인용기 포장을 거절당한다 해도 십분 이해 가능했겠지만, 여태 누적되어온 사례들처럼 내 예상을 멋지게 뒤엎고 포장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 역시 있었다.
    아이스크림 포장 가게 사장님들 보고 계신가요? 제품이 훼손되어도 항의하지 않을 테니 개인용기 포장 가능하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용기 포장 요청은 원래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내가 배달의민족 앱을 애용하는 이유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주문 과정에서 쓸데없이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매번 주소를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을 조금 더듬어 메뉴 이름을 잘못 말하거나 잘못 들어 재차 확인할 염려도 없으며, 주문기록이 단단히 남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음식이 배달되었을 때 이게 내 잘못인지 가게 사장님 착각인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 등.

 

또 하나의 사실, 용기를 지참해 포장해오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궁둥짝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 날씨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물론, 배달 주문일 때는 대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가게 사장님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수도 생긴다는 게 썩 편치 않다. 그 불편함을 무릅쓰고 굳이 하는 게 제로고, 다이어트고, 그린인 것 같다.

 

이번 체험을 하면서 느낀 바가 그렇다. 실천은 불편하다. 그건 당연하다. 편하라고 만들어둔 것들을 얼마간 거부하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니 불편이 따라오는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실천은, 상상보다는 덜 불편하다. 나를 정말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 깨달음이다.

 

의외로 어렵지 않은 그 일에 유일하게 필요한 건 용기뿐이라는 사실.

할 만해서 하는 일이며, 감수해야 하는 작은 불편에 비해 장점이 많은 데다, 의외로 ‘남들이 안 하는’ ‘유난스러운’ 짓도 못 된다.

 

 

소설가가 입사했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ep.3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싫어요

▶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ep.5 The 큰 집으로, 더 Next Level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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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입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 공장 이야기를 쓰고,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 이야기를 쓴 것처럼 소설가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쓴다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 소설가 박서련이 직접 경험하고 쓴 다섯 편의 우아한형제들 이야기

 

 

킬링 퍼스트 센텐스 Killing First Sentence.

죽이는(이라고 쓰고 맛깔나게 ‘직이는’이라고 읽어보자) 첫 문장.

 

어떤 글을 쓸 때에나 이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첫 단락에서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면 글의 끝까지 독자를 데리고 가기가 어려우니까. 예외적으로 글감이 사기급으로 좋을 때에는 첫 문장이야 아무래도 좋지 않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 이야기가 그렇다……

 

우아한형제들 스마트 오피스, ‘더 큰 집’ 방문기.

2022년 1월 현재로서는 우아한형제들 구성원들조차도 대부분 입장해보지 못한 거-의 전인미답의 공간, ‘The’ 더 큰 집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이런 글은 딱히 구성에 대한 고민도 들지 않는다.

 

순서대로 쭉쭉 갈 테니까 꽉 잡으시라는 뜻입니다.

 

서울살이 통산 10년을 넘긴 요즈음까지도 촌티를 못 다 벗은 내게는 롯데월드타워야말로 거-의 본인미답의 장소였다. 과장 조금 보태서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방문 예정일 아침 문자 메시지로 숫자 여섯 자리 방문자 코드가 전송되었고 그 방문자 코드는 롯데월드타워 로비 특정 구역에 있는 키오스크에 입력되어야 했으며 그 키오스크를 찾기까지는 안내직원 두 분을 거쳤기 때문……

 

38층에 위치하는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늘 더 큰 집 투어를 함께 할 우아한형제들의 구성원 분들이 날 맞이해 주셨다. 신규 던전인 더 큰 집을 공략하기 위한 파티가 결성된 듯한 느낌. 이윽고 던전 보스…… 가 아니고 공간디자인실 이사님과 팀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사내에 별도로 공간 디자인 전담 부서인 공간디자인실을 두고 있으며, 그들이 바로 더 큰 집을 설계한 장본인들이라는 귀띔이 있었다.

 

🔎 “로비 벽을 일반적인 페인트벽으로 하지 않고 벽돌벽으로 만든 것에 주목해 주세요. 이 공간의 전체적인 콘셉트에 대한 힌트니까요.”

우아한형제들_벽

 

🔎 “더 큰 집은 롯데월드타워 38층 전체와 37층 절반을 사용하는데, 이 건물의 고층 오피스는 바깥 전체가 통창으로 보이는 형태거든요. 즉 한 층 전체를 사용하면, 중앙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부분을 제외한 전부가 열려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이 점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고 싶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야외 오피스로 이어진다’라는 콘셉트로 전체적인 작업을 해 봤어요. 로비에 자갈을 깔고 책상을 둔 것도 그 느낌을 단적으로 표현해본 거라고 할 수 있죠.”

우아한형제들_인테리어

 

 

‘야외 오피스’라는 말이 공간의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했다. 과연 곳곳에 배치된 커다란 식물들이며 탁 트인 공간 구성 등이 캘리포니아나 유럽 어딘가의 카페테라스 같은 것을 연상시켰다. 참고로 나는 둘 다 가본 적이 없지만.

 

🔎 “벽 아래에 둔 사물함들은 그럼에도 이 사무 공간이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거예요. 원하는 공간 어디에서나 업무를 볼 수 있게 열어뒀기 때문에 모든 공간이 자기 영역이 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자기만의 공간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직책과 경력에 무관하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칸씩은 나눠줄 수 있는 사물함을 둔 거죠. 사무공간 한 구석에 자기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물론 업무 관련 물품을 수납해두는 기능도 있고요.”

우아한형제들_사물함

 

자율적이고 탁 트인 공간 안의 소속감.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뉴 노멀이 되었으니 물리적으로 흩어져있는 구성원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 우아한형제들에게도 화두일 수밖에.

우아한형제들_사무실

 

스마트 오피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도 ‘스마트’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사무공간과 회의실, 그 공간들을 위한 좌석 예약 시스템, 내가 일하는 자리까지 음료를 배달해주는 딜리까지.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솔직한 심정으로는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테크 기업들의 사무 공간을 우린 이미 봐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스마트한 공간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이질적인 게 있었다. 회의실을 둘러보고 나서는데, 투어 팀원 중 한 분이 회의실 이름을 잘 봐 두시라고 귀띔했다. 정말 모든 회의실에는 명찰처럼, 사람 이름이 붙어있었다. 뭐지, 이건. 어린애가 지렁이 낙서를 한 것처럼 쓰인 회의실 이름이 뭐 어쨌다는 거지…… 무슨 값비싼 현대미술 커미션 같은 걸로 만든 걸까? 나야말로 무지렁이라서 그걸 못 알아볼 뿐인 걸까……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온 기억이다.

 

이 와중에 이 공간이 사무실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 곳이 있었으니, 이름이 무려 ‘청평 같은 방’이다. 역시 남의 집 구경에서 남는 것은 부러움 뿐인가…… 청평 같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팀장님이 하신 말씀은 또 이렇다.

 

🔎 “스페인 같은데 청평 같다고나 할까? 마드리드에 청평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콘셉트예요.”

 

그게 무슨 순대 같은데 치미창가 같기도 한 소리죠? 라고 여쭙고 싶었지만 코르크 벽 한 면이 비밀의 문처럼 스르르 열린 후 보인 광경을 보고서는 무슨 말씀인지를 단박에 이해할 수가 있었다.

 

🔎 “평자 돌림 지역 펜션으로 엠티를 많이들 가잖아요. 양평, 가평, 청평 같은 곳 말이죠. 팀별로 워크샵을 가서 팀워크도 다지고 좋은 아이디어와 기운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사내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본 기획이었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서 더 큰 집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금 더 고급진 느낌을 추구해본 게 왠지 스페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아한형제들_청평

 

38층 바깥쪽을 빙 두르는 원호의 일부로 구성된 청평 같은 방은 펜션보다는 펜트하우스처럼 느껴졌다. 드라마에 나오는 홈 파티 장면을 여기서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 곳곳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놓인 소품들을 옷 속에 숨겨 나가고 싶다는 괘씸한 생각, 집에 가는 척하고 몰래 여기 숨어 살고 싶은 미친 생각까지 두서없이 들었지만 짐짓 점잖은 척 뒷짐을 지고 설명을 들었다.

 

“작가님, 여기서 사진 찍고 싶지 않으세요……?”

 

이 날도 동행하신 우리 에이전시 실장님이 나한테 그렇게 물으셨고 물론 찍고 싶었지만 품위를 생각해서 사양했는데 지금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저 한 방 찍어주시고 실장님도 찍어달라는 뜻이었던 것 같군…… 그렇지 않아도 투어에 참여한 기업브랜딩 팀 분들은 각자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들 계셨고, 그도 그럴 것이 배경이 너무도 그럴싸해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나오는 공간이었다.

 

체감상으로는 대학 도서관에서 옆 건물 강의실로 걷는 정도로 걸은 다음에야 트랙방이 나왔다. 공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만큼, 큰집에서보다 더욱 욕심을 내서 구성해 보았다는 트랙방은 정말 육상경기를 해도 좋을 만큼 넓었다.

우아한형제들_트랙방

 

🔎 “사실 이 공간의 비밀은 계단식 트랙 좌석 뒤편에 있어요.”

 

여태 많이 놀랐는데 또 놀랄 일이 있으려고요, 하며 둥근 트랙 계단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자 푸른 타일로 장식된 공간이 나타났다. 유리창 하부 벽과 단차가 없도록 바닥을 높여서 창을 진정한 통유리창으로 만들고 곳곳에 미러볼을 배치해둔 그곳을 이사님과 팀장님은 ‘수영장’이라고 불렀다. 과연 해외 유명 호텔의 인피니티 풀을 연상케 하는 시원한 공간이었다.

 

🔎이 디자인 콘셉트가 제안되었을 때 저희가 결정까지 들인 시간은 채 30초도 되지 않죠.” 

 

팀장님이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우아한형제들_수영장

 

“한강은……”

누군가의 조금 메인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휘어져 있군요.”

정말로 그랬다. 한강 다리 다섯 개쯤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시야가 넓다 보니 한강이 얼마나 어떤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새 트랙방에서 회의를 한다면, 대략 삼백 명까지 동시 수용이 가능하다는 이 공간에서 다시 대인원 회의가 가능해진다면, 등을 감싸는 한강의 무게를 모두가 동시에 톡톡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건 그야말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를 말없이 체험하는 경험이 되겠지.

 

여기 놓인 물건들을 갖고 싶다거나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솔직하고 사적인 소유욕을 넘어, 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 이 공간의 일원이 되면 좋겠다—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욕구는 트랙방에서 비로소 샘솟기 시작했다.

 

 

1시간 가량의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청평 같은 방에 앉아 음료를 홀짝이며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저 들었다.

 

🔎 “더 큰 집 역시 초기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배경의 영향을 수용하려고 했죠. 바로 앞에 매직아일랜드가 보이는 것에서 착안해 꿈과 환상, 동심을 담아 <피터팬>의 네버랜드 콘셉트로 네이밍 하는 게 어떨까. 웬디, 피터팬, 후크 같은 이름을 회의실에 붙이는 식으로요.”

 

최종 기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사무실이 위치한 곳의 배경과 어우러지는 브랜딩을 추구한다는 점이 인상 깊은 아이디어였다.

 

🔎 “우아한형제들의 구성원 대부분이 의장님과 소통하는 게 자연스럽고 원활한 편이지만 브랜딩을 담당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죠. 제일 먼저는 새 공간 전체의 명칭을 정했어요. 처음에는 ‘높은 집’이 가장 많이 거론됐어요. 그런데 ‘높다’라는 특성은 우리 공간만의 특성이라기보다 롯데월드타워라는 건물의 특성에 가깝죠. 그래서 보다 우리다운, 우리만의 것처럼 느껴지는 이름을 좀 더 고민해보게 됐는데, 우아한형제들의 근간이 되는 건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정신이거든요. 새 공간에 자리를 잡으면 ‘더’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높은 집’이라는 이름은 일단 제쳐뒀지만, 우리 회사 역시 높은 층 넓은 사무실을 쓰게 되긴 하죠. 높고 넓은 것, 한 마디로 뭐냐면 큰 거잖아요? 실제로 큰 집 사무실보다 더 크고요. 그런데 여기에도 ‘더’가 들어가네요. 더 일하기 좋은 회사, 큰집보다 더 큰 집.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큰 집이 되는 거네요.”

 

🔎 “네, 이렇게 해서 새 공간의 명칭이 ‘더 큰 집’으로 정해졌어요. 더 나아가서 ‘더’라는 말의 이미지를 회의실 이름에도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죠. 예를 들면 ‘더 의사결정 잘 되는 방’, ‘더 아이디어 잘 나오는 방’, ‘더 일하기 좋은 방’.”

 

“그것도 좋은데요?”

 

🔎 “아예 백지상태일 땐 의장님도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회의실 이름 아이디어를 두세가지 안으로 정리해 보여드렸더니 흠…… 하고 마시더라고요. 하하하…… 다시 근간으로 돌아가 보면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아한형제들의 신념이고 핵심 가치거든요. 구성원들에게는 일하기 좋은 회사, 구성원 가족에게는 내 가족이 일하는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말이잖아요. 새로운 폰트를 개발할 때마다 구성원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했던 프로젝트였고요.”

 

그러니까 투어 초반에 회의실 이름을 잘 봐 두라고 했던 건 이 얘기를 위한 복선이었군.

 

🔎 “회의실을 사용하는 건 일하기 위해서고 일할 때마다 가족의 이름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아이디어는 의장님에게도 지지를 받았는데 실행 단계에서 조금 불안감도 들었어요. 처음 개발한 폰트에 구성원 자녀 이름을 붙였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회사가 엄청나게 성장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몇몇 특정한 사람들 자녀 이름으로 회의실 명칭을 정하는 게 괜찮을까,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거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일단 자녀 이름 공모를 시작해 봤어요. 그런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반응이 왔어요.”

 

함께 일하는 구성원의 자녀라면 나에게도 가족이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과연 우아한 ‘형제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과장되게 추어주려는 마음도 깎아내리려는 마음도 아니고, 말 그대로 가족 같은 회사구나 하는 감상.

 

🔎 “아이디어에 대한 호응들도 좋았고, 공모에 실제로 참여한 가족의 수도 예상치를 웃돌았고요. 어린 자녀가 직접 쓴 자기 이름을 사진이나 스캔 파일로 보내달라고 공지를 올렸는데, 뽑힌 어린이 중 최연소자는 세 살이거든요?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을 나이잖아요. 그런데 구성원인 부모님이 열정이 엄청나셔서, 이름을 앞에 두고 그림처럼 따라 그리도록 해서 공모에 참여하신 거예요. 아이가 직접 했다는 증거로 동영상까지 보내주셨어요.”

 

어쩐지 유독 지렁이 같은 글씨가 있더라니…… 뒤늦으나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손글씨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요?”

 

🔎 “그건 의장님이 제안하신 거예요.”

 

“천재시네요…..”

(의장님 기분 좋으시라고 제가 지어서 넣은 부분이 아니라 실제로 나온 말입니다.)

 

🔎 “이름이 당첨된 아이는 내 이름 붙은 방을 실제로 보고 싶다고 하고, 어떤 미당첨 어린이는 내 이름 뽑혔는지 안 뽑혔는지 아직까지도 물어보고 있대요. 그래서 구성원 자녀들이 이 공간을 둘러볼 수 있도록 패밀리 투어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문득 떠오른 이미지는 픽사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하곤 하는 프로덕션 베이비 목록이었다. 어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제작 기간에 태어난 구성원 자녀의 이름을 엔딩 크레디트에 모두 기록하는 마음, 그 태도. 이건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작업이고, 이 작업으로 밥벌이를 한 우리 중 몇 사람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것을 우리는 이렇게 기념한다. 그런 마음에서 나왔을 기록…… 그 어린이들의 이름과 이곳 어린이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포개지며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작가님,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필경 예의를 갖춰 전송하려고 꺼냈을 누군가의 인사말에 나는 진지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스마트폰 만보계 앱에 따르면 제 일일 걸음 수는 평균 백 보 안팎 이거든요.”

“오늘 한 삼십 배는 걸으셨겠어요.”

 

집에 돌아가 확인해보니 그날의 걸음 수는 육천 보가 넘었다. 더 큰 집 투어 전후에 롯데 월드타워 안팎을 거닐었던 기록도 감안해야 할 테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사무실 안에서만도 삼천 보 넘게 걸은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아니 사무실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넓으면 어떡해, 너무 넓어서 다니는 사람들 짜증 나겠다…… 물론 스마트 오피스 출입이 단 하루밖에 허용되지 않은 외부 필진으로서 저 포도는 신 포도다, 흥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한편 그날 투어와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우리 에이전시 실장님과 내가 단둘이 남았을 때 우리는 이런 대화도 했다.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롯데월드 가고 싶으면 가겠네요.”
“근데 저 이거 소신발언인데……”
“뭔데요.”
“이제 어른이라 그런지 롯데월드보다 여기가 재밌는 것 같아요.”

“저도 소신발언……”

“말씀하세요.”
“저도 그런 것 같네요.”

 

실장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침내 혼자 남았을 때는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때때로 웃긴다는 말의 동의어가 되고 진지하지 않아 보인다는 말로 오해되기도 하며 실없는 것을 좋게 표현할 때 오용되기도 하는 그 말. 하지만 어떤 재미는 의미와 함께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진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재미는 기능적이기까지 하다.

 

혹시 배민다움이란, 그런 재미에 대한 말인 걸까…… 를 나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고, 이 글을 쓰느라 그 생각을 돌이키다, 나를 그 생각으로 이끈 게 다름 아닌 공간 투어라는 점에 기묘한 당황을 느끼고 있다.

 

 

소설가가 입사했다

ep.1 주문하신 소설가 왔습니다

ep.2 채식도 개발이 되나요

ep.3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싫어요

ep.4 용기를 가져가겠습니다

▶ ep.5 The 큰 집으로, 더 Next Level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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